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시험도 성적도 없는 학교, 인도 '사야드리 학교(Sahyadri School)'의 교육 철학

by jowon2025 2025. 6. 19.

인도는 전통적으로 치열한 경쟁과 시험 중심의 교육 문화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은 시험도 성적도 없는 학교, 인도 '사야드리 학교(Sahyadri School)'의 교육 철학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많은 학생들이 입시와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성장하고, 부모들은 자녀의 학업 성과를 사회적 지위와 직결되는 요소로 여긴다. 하지만 이런 경향에 정면으로 맞서는 학교가 있다. 바로 인도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 푸네(Pune) 인근에 위치한 사야드리 학교(Sahyadri School)다. 이곳은 시험도 없고, 성적표도 없으며, 경쟁도 없는 독특한 교육 철학을 실천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 학교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결과는 어떠한가? 이번 글에서는 사야드리 학교의 철학, 수업 방식, 그리고 학생들의 실제 변화와 성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시험도 성적도 없는 학교, 인도 '사야드리 학교(Sahyadri School)'의 교육 철학
시험도 성적도 없는 학교, 인도 '사야드리 학교(Sahyadri School)'의 교육 철학

 

‘평가 없는 교육’의 철학 – 크리슈나무르티 사상의 구현

사야드리 학교는 단순한 대안학교가 아니다. 이 학교의 뿌리는 20세기 인도의 철학자, 교육자, 정신적 지도자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의 교육 철학에 있다. 그는 평생을 통해 “두려움 없는 교육”, “조건 없는 관찰”, “진정한 자각”을 강조했다.

1) 크리슈나무르티의 교육관

그는 ‘시험을 위한 교육’이 인간의 창의력과 내면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보았다. 외부 평가에 집착하게 되면, 아이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게 되고 두려움, 스트레스,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교육은 인간 전체를 여는 일이며, 단순한 정보의 주입이 아니라 삶의 이해를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야드리 학교는 이 철학을 그대로 실천한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지 않고, 학기 말에 성적표나 석차도 부여하지 않으며, 경쟁을 조장하는 방식을 철저히 지양한다. 대신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존중, 자연과의 연결감, 스스로 배움의 주인이 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2) 교사의 역할은 ‘전달자’ 아닌 ‘관찰자’

이곳의 교사는 강의 위주의 수업을 하지 않는다. ‘지식을 전달하는 전문가’가 아닌, 학생들과 함께 탐색하고 질문하고 관찰하는 파트너 역할을 한다. 교사는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민감하게 살피고, 그 관심이 더 깊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다.

3) 경쟁이 아닌 협력의 문화

사야드리 학교에는 ‘1등’도 ‘꼴등’도 없다. 아이들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함께 토론하고 협력하며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리더십, 공감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이 길러진다.

 

실제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 자유와 질서의 균형

많은 사람들이 “시험도 없고 성적도 없다면,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 하지만 사야드리 학교의 실제 수업은 무질서하거나 방임적인 교육이 아니다. 이곳은 자유와 자율을 기반으로 하되, 깊이 있는 학습과 자기주도성을 핵심으로 한다.

1) 하루의 시작 – 조용한 명상과 자연 산책

하루는 아침 명상으로 시작된다. 학생들은 학교가 위치한 언덕의 자연 속을 함께 산책하며, 자신과 자연을 조용히 관찰한다. 이 과정은 ‘마음의 준비’이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다. 감정과 생각을 정리한 후에 교실 수업이 시작된다.

2) 교과 수업 – 개별화된 주제 중심 학습

국어, 수학, 과학, 역사 등 기본 교과는 모두 존재하지만, 표준화된 커리큘럼은 없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학기 초에 관심사를 나누고, 그에 맞춰 주제 중심 프로젝트 학습을 설계한다. 예를 들어, 수학 수업에서는 단순히 공식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숫자의 기원, 생활 속 수학, 자연의 패턴(피보나치 수열 등)을 주제로 삼는다.

과학 수업도 교과서가 아닌 자연 속 탐구에서 시작된다. 학생들은 직접 식물의 생장을 관찰하고, 동물의 행동을 기록하고, 실험과 토론을 통해 과학적 사고를 익힌다.

3) 예술, 철학, 신체 활동의 통합

사야드리 학교는 예술과 철학을 단순한 부가 활동이 아닌, 교육의 핵심 요소로 본다. 학생들은 매주 일정 시간을 그림, 연극, 음악, 무용 등에 자유롭게 할애하며, 감성적 표현과 자기 탐색을 이어간다. 또한 '청소년 철학 시간'에는 생명, 죽음, 자유, 욕망 등에 대해 토론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힘을 키운다.

체육 역시 점수나 순위 없이 신체 감각을 키우고 호흡과 집중을 기르는 수단으로 운영된다. 요가, 명상, 공동 체조, 자연에서의 활동 등이 체계적으로 병행된다.

 

결과는 어떨까? – 학습 성과, 사회성, 자아 인식의 변화

시험도 없고, 성적도 없고, 등수도 없는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세상과 어떻게 만나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졸업생들의 변화와 사회 적응력에서 엿볼 수 있다.

1) 학업 성취도

놀랍게도 사야드리 학교의 졸업생들은 인도의 주요 대학, 예술학교, 해외 대학 등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를 위한 별도 교육 없이도, 깊은 사고력,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한다는 평가다. 입시를 준비하는 시점에는 교사들이 개인별 맞춤 지도와 포트폴리오 작성을 지원한다.

2) 높은 자기 효능감과 자아 존중감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존중, 세상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 경쟁을 겪지 않고 자란 이들은 스스로를 비교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으며, 실패나 실수에 대해 관대하고 유연하다. 이는 정신 건강과 자기 효능감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3) 사회성, 협력, 갈등 해결 능력

경쟁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협력과 공존의 감각이 뛰어나다. 사야드리 졸업생들은 직장, 팀 프로젝트, 공동체 활동 등에서 타인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다양한 계층과 문화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포용성과 다문화 감수성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사야드리 학교는 단순히 시험 없는 학교, 성적표 없는 학교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아로 자라고, 세상을 자기 관점으로 이해하며, 두려움 없이 질문하고 실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학교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시험은 아이를 평가하는 도구인가, 길들이는 도구인가?”

경쟁 중심 교육에 지친 우리 사회에서, 사야드리 학교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답보다 질문을,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는 교육이 과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쩌면, ‘1등’이라는 말 대신 ‘진짜 나’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교실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